요즘 누구랑 얘기하다 보면 꼭 한 번은 나오는 말이 있다. “야, 대출 얼마나 남았냐?” 혹은 “아… 금리 좀만 내려줬으면 좋겠다.” 슬프게도 이제 빚은 그냥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의 공기처럼 퍼져 있는 일상적인 압박이고, 더 심각하게 말하자면, 한국 경제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뇌관이기도 하다.
가계부채. 말은 참 익숙한데, 그 안엔 참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누구는 집을 사기 위해 빚을 졌고, 누구는 학자금을 갚느라 허덕인다. 누군가는 카드 돌려막기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누군가는 사업이 망해도 빚만 남겨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게 하나로 모이면, 경제의 아래에서 꿈틀대는 ‘불안’이 된다.
숫자로 본 한국의 가계부채, 너무 많다
2024년 기준으로, 한국의 가계부채는 약 1,800조 원. 이게 어느 정도냐면,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보다 더 많다. IMF나 OECD 같은 국제기구들도 한국을 ‘가계부채 고위험국’으로 분류한다. 이건 단순히 “빚이 많네”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GDP보다 부채가 많다는 건, 국가 전체가 1년 동안 벌어들이는 돈보다 가정들이 갚아야 할 돈이 더 많다는 뜻이다. 조금 비유하자면, 월급보다 카드값이 더 많은 가정이 집집마다 수두룩하다는 거다. 이게 오래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버티던 카드가 한 장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무너지게 된다. 이걸 경제학에선 ‘시스템 리스크’라고 부른다.
왜 이렇게까지 늘었을까?
사람들이 단순히 돈을 펑펑 썼기 때문일까? 그건 너무 단순한 해석이다. 가계부채가 이렇게까지 늘어난 데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는 **집값**. 서울 수도권 집값, 말이 안 됐던 시기가 있었다. ‘이제 안 사면 평생 못 산다’는 공포, ‘남들은 다 벌었다더라’는 자극. 이런 분위기에서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았고, 실제로 수많은 2030 세대가 ‘영끌’에 뛰어들었다.
둘째는 **저금리 환경**. 2010년대 후반부터 코로나19 이후까지, 기준금리가 매우 낮았다. 대출이 부담이 덜하니, 소비도 많아지고 투자도 쉬워졌다. 그런데 금리는 영원히 낮지 않다. 2022년 이후 기준금리는 급격히 올랐고, 변동금리 대출자들은 ‘이자 폭탄’을 맞게 된다.
셋째는 **소득보다 빨리 오르는 생활비**. 물가 상승률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월급으로 감당되지 않는 생활이 일상이 됐다. 결국 그 차이를 메꾸기 위해 사람들은 빚을 낸다. 대출은 더 이상 투자의 수단이 아니라 생존의 수단이 된 셈이다.
가계부채, 그냥 두면 무슨 일이 생길까?
경제학자들은 반복해서 경고한다. “가계부채는 장기적으로 경제의 성장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왜일까? 이유는 명확하다.
- 빚을 갚느라 소비가 줄어든다. → 내수 시장이 침체된다.
- 이자 부담이 커지면 부도율이 오른다. → 금융권 건전성이 흔들린다.
- 한계가구가 많아지면 정책 여지가 줄어든다. → 정부 개입 여력도 약해진다.
게다가 부동산 가격이 꺾이면 더 심각해진다. 빚내서 산 집이 자산이 아니라 ‘빚덩이’가 되는 순간, 심리적·경제적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일명 ‘하우스 푸어’는 그 현실을 가장 잘 보여준다.
해법은 없을까?
그렇다고 무작정 대출을 규제한다고 해결될까? 그건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첫 집 마련이 더 어려워지고, 생계형 대출까지 막히면 저소득층은 더 힘들어진다.
해법은 ‘균형’에 있다. 무조건 막는 것도, 무작정 풀어주는 것도 답이 아니다. 소득을 늘릴 수 있는 구조, 금융교육과 재무설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
정책적으로는 가계부채 중에서도 ‘위험군’을 구분해서 다르게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생계형 채무는 이자율을 낮춰주거나 유예기간을 주고, 투기성 대출은 강하게 규제하는 식의 ‘선별적 대응’이 필요하다.
가계부채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숫자는 차갑지만, 그 뒤엔 사람이 있다. 지금도 밤늦게까지 일하고, 대출 이자 날짜를 계산하며 하루를 보내는 누군가가 있다. 그 사람에게 ‘1,800조’라는 숫자는, 그저 거대한 통계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다.
가계부채를 논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하나다. 이건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 수 있느냐’는 문제라는 것. 경제 위기라는 말은 결국, 누군가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