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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불평등, 숫자가 아니라 삶의 온도다

by woooahh 2025. 7. 25.

부의 불평등은 경제학 교과서 속 나오는 용어로 생각 하기보단 현대 사회에서 실생활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단어입니다. 통계 수치 뒤에 숨은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 지니계수가 말해주지 못하는 삶의 온도차를 함께 들여다봅니다. 우리가 지금 느끼는 불공정의 정체는 무엇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시선은 과연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

부의 불평등, 숫자가 아니라 삶의 온도

불평등은 뉴스보다 가까이에 있다

요즘은 뉴스를 틀면 ‘지니계수’나 ‘상위 10% 자산 점유율’ 같은 말들이 어렵지 않게 들립니다. 그런데, 정작 그 수치들이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잘 와닿지 않습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게 되죠.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서울은 이제 내겐 남의 도시야”라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더군요. 같이 자취방을 전전하던 친구였고, 직장도 나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 동네에 살 자격은 없다’는 생각을 스스로 한 겁니다. 그 순간, 숫자보다 더 강한 현실감이 밀려왔습니다. 불평등은 신문이나 통계 속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밥 먹는 친구의 표정에 더 가깝게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지니계수 같은 지표는 단지 시작점일 뿐이고요.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대략 0.34~0.36 사이를 오갑니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중간보다는 약간 위, 다시 말해 ‘조금 더 불평등한 편’입니다. 이 수치는 주로 세전소득을 기준으로 잡은 것인데, 여기에 세금과 복지를 고려한 ‘조정 지니계수’로 보면 그 격차가 조금 줄어듭니다.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소득은 그나마 노력으로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는 영역인데, 자산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특히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외부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 자산은 물려받지 않으면 격차를 좁히기 어렵죠. 그래서 요즘 젊은 세대일수록 “내가 아무리 벌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생각에 더 지칩니다. 요컨대, 숫자로 보는 불평등보다 실제 삶에서 체감하는 불평등은 더 크고, 더 깊습니다.

지니계수는 차가운 숫자, 그 뒤에 숨은 온도는 따로 있다

지니계수는 0과 1 사이의 숫자로,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합니다. 아주 간단한 수치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현실은 복잡합니다. 예를 들어,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다면, 나머지 90%는 그 절반을 나눠 가지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수치를 듣고 ‘불공정하다’고 바로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그게 세상의 이치 아니냐”고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결국 불평등은 수치 그 자체보다,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가에 따라 더 크게 작용합니다. 중요한 건, 단순히 돈을 나누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분배하자는 주장도 아니고요. 우리가 말하고 싶은 건 ‘기회의 문턱’을 낮추자는 겁니다. 더 많은 사람이 출발선에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최소한의 기반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복지제도를 통해 이 격차를 줄이려 하고 있습니다. 공공임대주택, 기초생활 보장, 교육비 지원 같은 정책들이 대표적이죠. 우리도 최근 몇 년간 이런 정책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여전히 체감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아마도 문제는 ‘제도가 있느냐’보다 ‘그 제도가 필요한 사람에게 닿느냐’에 더 가까울 겁니다. 어떤 복지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제도의 설계만큼이나 그 접근성과 실행력이 중요합니다.

숫자 말고, 사람의 표정을 보자

저는 뉴스를 통해 지니계수를 볼 때보다, 지하철 안에서, 친구들과 대화할 때,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스쳐 지날 때 더 실감납니다. “결혼은 포기했어요”, “서울은 그냥 일하러 가는 곳이죠” 같은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갈 때, 이게 단순히 소득 문제가 아니라 꿈과 희망, 방향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걸 해결하려면 단순히 ‘세금을 더 걷자’, ‘부자에게 더 부담을 주자’는 방식으론 부족하다는 것도 느낍니다. 제도 설계 자체가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다면, 아무리 겉보기엔 공평해 보여도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비판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조금씩 구조를 바꾸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사교육 없이도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교육 환경을 만들고, 청년층이 집을 구하는 데 절망하지 않도록 공공주택 시스템을 정비하며,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회적 쿠션을 마련하는 것. 그건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얼마나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누구나 완벽하게 평등한 세상을 원하지는 않지만, ‘내가 너무 뒤처진 게 아니야?’라는 절망을 안고 살고 싶진 않다는 것, 그건 많은 이들의 진심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숫자는 통계를 말하지만, 사람은 표정을 말합니다. 우리가 지니계수를 이야기할 때,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